본문 바로가기
miscellaneous/회사원, 2014~

서른살의 문턱에서 지난 20대를 돌아보며

by hyperblue 2016. 1. 2.



드디어 서른살이 되었다. 생각했던 것보다는 큰 감흥이 없다. 10살 내외였던 꼬마 시절에는 '성인이 되고 대학생이 된다는 스무살이 되면 어떤 기분일까'를 늘상 궁금해했고, 되고 나니 정말 생각했던 것처럼 짜릿한 일들이 많았다. 금지되었던 것들이 스무살을 기점으로 많이 허용되었고, 낭만이 꿈틀대는 대학교 캠퍼스를 주무대로 막대한 자유가 주어졌다. 적어도 1~2학년 때에는 취업을 걱정하지도 않았고, 그 때(2006,2007년)만 해도 졸업반 선배들이 일류 대기업들을 골라서 가던 시절이었다. 이처럼 스무살이 되던 2006년부터 시작된 나의 20대는 여러밤을 새워가며 이야기해도 끝이 없을만큼 재미있고 아름다운 추억들로 가득채워진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사진첩이다.


당시에는 철없이 무거운 기타를 들고 홍대를 전전하며 마치 전업 뮤지션이라도 된 것처럼 살았다. 엉덩이에 종기가 날만큼 피나게 공부하며 전교 석차를 지켰던 학창시절을 보상받듯 과외를 통해 쉽게 돈을 벌었고, 그 돈으로 여자친구와 만나고, 사고싶은 것을 사며 무엇 하나 부족할 것 없는 삶을 살았다. 그렇게 '인생의 황금기'는 영원히 계속될 것만 같았다.


이러던 와중에 동기들이 하나둘씩 군대로 사라졌고, 나 역시 3학년 1학기까지 마치고 좀 늦은 22살에 의무경찰로 입대를 했다. 이 블로그의 포스팅 중 많은 부분을 차지할 정도로 2년간의 복무기간은 나에게 다양한 경험을 선물했고, 자랑스러운 시간이었다. 하지만, 예비역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젊음의 패기로 똘똘 뭉쳐 전역했던 2010년부터의 세상은 이전과는 좀 다르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주변 친구들이 저마다 전역 후 뭔가를 하고 있었고, 나 역시 회계사가 되겠다며 수험생활을 시작했다. 능력에 대한 과신, 절박함의 부족, 노력의 결여는 결국 2년에 걸친 수험생활의 쓰디쓴 실패로 돌아왔고, 졸업을 준비하며 취업으로 눈을 돌렸을 무렵의 취업시장은 아름다웠던 1, 2학년 때와는 180도 달라져있었다. 모두가 고전하던 시기에 나를 좋게 봐준 지금의 회사에 운좋게 입사해서 정신없이 다니다보니 어느덧 이 시점이 된 것 같다.


이제는 사진, 혹은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만 떠올리곤 하는 20대. 요즘 신촌을 돌아다니고, 학교 캠퍼스를 돌아다닐 때는 이전과는 다른 이질감을 느낀다. 어찌보면 웃기지만, 집보다 더 많은 시간을 신촌에서 보내던 그 시절엔 마치 그 곳이 '내가 있어야 할 곳'과 같은 이상한 소속감 혹은 동질감이 있었다. 지금은 그저 옛추억이 깃든 서울의 번화가 중 하나일 뿐이다. 신촌의 많은 단골술집들 주인과 간판이 바뀌면서 그 곳에서, 혹은 그 앞에서 학교 응원가를 고래고래 부르고 객기를 부리면서 쌓았던 나의 추억도 같이 사라져버린 것만 같은 이 씁쓸함이란.


지금은 빨간 잠망경(?)같은 것이 이정표가 된 신촌현대백화점 유플렉스가 있기 전에 그 자리에는 '신나라레코드'가 있었고, 소개팅 혹은 미팅할 때 주요 접선 스팟이었더랬다. 문자로 수줍게 '신나라레코드 앞에서 봬요'라고 보냈던 그 때- 함께 술잔을 기울이던 많은 동년배 여학우들은 이젠 누군가의 와이프, 혹은 '○○맘'으로 자신을 지칭하며 같은 하늘 아래를 살아가고 있지는 않을까. 이유도 모르고 술집에서 '통일연세! 민족고대! 해방이화!'를 소리높여 외치며 FM을 하던 이들은 지금은 어디서 무얼하고 있을까.


함께 학교를 다니며 웃고 떠들던 친구들, 선후배들중에는 고시합격을 통해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고위 공무원도 여럿 나왔고, 취업시장에서 누구나 부러워하는 '신의 직장'에 들어간 이들도 부지기수이다. 나에게 엄청난 투자와 희생을 하신 부모님의 눈높이에 맞는 삶에는 미치지 못하는 것 같아서 적잖이 죄송한 것도 사실이다.


나는 늘 부모님께 말한다. 나의 인생의 모토는 '즐거움'이라고. 부모님, 처자식에게 경제적 궁핍을 안겨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내가 생각하는 '즐거움'을 누리고 살고 싶노라고. 부모님은 늘 말씀하신다. 그 즐거움은 '부와 명예'가 뒷받침될 때 마음 편히 누릴 수 있다고.


인생의 선배인 부모님의 말씀에 그닥 틀린 점이 없다고 생각할 수록 30대를 맞이하는 나의 가슴은 무겁다. 20대를 맞이하던 설렘과는 180도 다른, 바로 그런 기분. 설렘 보다는 두려움과 후회가 앞서는 기분. '나 자신'이라는 내생변수가 만들어낸 지금의 나는 굳이 남과 비교하지 않으면 충분히 만족스럽고도 즐거운 삶을 영위하고 있지만, 세상이라는게 그렇게 나 하나만 생각하면 될 만큼 단순하고 쉽지만은 않은 것 같다. 누군가는 일찌감치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육아를 하며 다들 인생의 '발달과업'을 차근차근 밟아가는데 난 아직 락음악을 하고 싶고, 기타를 치고 싶고, 딱히 결혼생각은 없으면서 신나게 살고 싶은(현실은 그렇지 않은) 어린 아이일뿐이다.


10년 후인 40살에도 이 블로그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살아있을 것이고, 나는 또 끄적거릴 말을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10년 후의 내가 키보드를 만지작거릴 그 시점에 과연 나는 무엇을 하고, 어떤 환경에 살고 있을지가 너무 궁금하다.


2016년 1월 2일,

먼훗날 관뚜껑 닫기 직전에도 기억날만큼 짜릿하고 아름다웠던 나의 20대에게 눈물의 작별인사를 하련다.

지금은 연락하고 싶어도 어색해서 할 수 없는 20대의 수 많은 동반자들에게도 감사인사를 전한다.

젊음은, 그 중에서도 20대는 그 자체로 너무나 아름답다.


쳇바퀴같은 24시간 생활 앞에 무뎌져버린 30대의 문턱에서 눈에 띄게 늙어버린 거울 속 아저씨를 바라보며 새해엔 '건강'을 소망해본다. 20대보단 조금 더 현실에 순응하며 인생의 즐거움을 누릴 방법을 고민해봐야겠다.


어찌됐건 10년전이나 지금이나 내 인생의 중요한 한 축은 '음악'이 계속 함께 있음에 뿌듯함을 느끼며 2016년, 30살의 첫 글을 줄인다.

Rock음악은 樂음악이다.

댓글